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정확한 것은 해머로 까마귀 30마리를 포대자루에 담아왔던 그 이듬해 외갓집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외숙모가 거짓말쟁이로 몰려버렸는데, "앗따, 재원이 점마가 증말로 쌀포대자루에 까마귀를 잡아왔당게요. 뒷간 닭장에 까마귀가 떼로 갇혀서 버둥치는디 오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증말로... 앗따 시숙님, 내가 뭣허러 거짓부렁이짓을 헌다고 그려요잉. 재원아! 니가 좀 말좀 혀봐라, 우찌 잡았는지말여.“
집안 사람들이 대낮에 정종 먹고 뭔 소리냐고 외숙모를 타박혔던 모양입니다. 추석날 다 모인 그 자리에서 외숙모가 그때 까마귀 30마리 잡은 것을 화두로 올렸는데, 저는 그날은 졸려서 그저 툇마루에 앉아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게 졸고 있었는디,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나섰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외삼촌이 대체 뭔소리여, 우째 11살짜리가 까마귀를 것도 삼십마리나 잡어. 참새라도 한 마리 잡아오면 내가 형수헌테 어무이라 큰절하고, 어무이처럼 모실게.
한 집안에 두 어무이를 모시는 것은 좀 모양새가 이상허다 싶어서 우짜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참새라고 잡아오면 인정하겠다는 둥 외삼촌이 시비(?)아닌 시비를 걸어오자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외삼촌에게 '삼촌 제가 살아 있는 참새 60마리 잡아오면 축사 돼지 등에 올라타줄랑가요. 그 약속 허시면 제가 참새 잡아올텡게. 외삼촌은 먹는 것 갖고 장난치면 안 되는디 함서도 흔쾌히 참새 한 마리당 내가 10만원씩 줄텡게 언능 잡아오라고 피식 웃으셨습니다. 돈은 필요 없고, 준비물 쪼까 챙겨서 거시기해불랑게 외삼촌 우데 가지 말고 기다려보소이.
저는 그래서 귀찮았지만 외숙모를 위해, 또한 돼지 등 뒤에 올라탄 외삼촌을 생각하며 참새를 잡았습니다. 준비물은 별거 없습니다. 그날은 햇살이 너무 좋은, 추석날 12시 반 정도 되었었는데, 저는 먹다 남은 정종에 쌀통에서 쌀을 한 주먹 꺼내 담아 놓고, 좁은 신작로까지 나가 가로수 낙엽을 포대에 한 푸대 담아왔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외갓집은 평야 곡창지대이고,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디넓은 남서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특히 참새녀석들이 시도떄도 없이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어디 전선 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야 지대에라 가옥도 채밖에 없었기 때문에 요놈들의 재절거림은 정말 사람 귀를 늘 어지럽히고 있었지요.
저는 까마귀 잡았던 쌀 포대에 이번에는 낙엽을 담아왔습니다. 사실 참새 잡는 법 정말 너무 간단한데, 총으로 쏴서 잡는 사람, 그물로 잡는 사람.. ㅠㅠㅠ 전 이런 사람들 정말 경멸합니다. 왜 이렇게 인간적이지 못합니까. 참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꼭 그런 식으로 피를 봐가며 잡아야겠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포창마차에서 참새구이를 팔았는데, 저는 먹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비인간적으로 돔물 잡는 것을 보면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참새에 대해 잘모릅니다. 참새는 절대 길거리에서 원래 잠자지 않습니다. 보신 분 있으신가요? 길바닥에서 잠들어 있는 참새를 본 적이 있는 분이 있다면 댓글 남겨 주십시오. 참새는 사실 거의 잠을 자지 않습니다. 잠시 잠시 전선이나 나무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는 하지만, 잠자는 그 시간도 채 몇 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놈들은 지들 잠자리 구색이 맞춰지지 않으면 절대 잠자지 않는 특성도 있습니다. 수많은 조류 연구자들이 말하기를 참새는 앵무새, 까마귀와 비교해도 그 지능이 떨어지지 않으며, 특히 자존심이 잠자리가 자기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절대 잠을 자지 않는 조류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캐나다 조지윈스턴대학교의 J.W Martin 교수팀은 '참새 잠자리 연구' 논문에서 한쪽 공간은 깔끔하고 푹신한 손바닥만한 침대와 배게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은 딱딱한 나무판자에 된장 같은 소스를 잔뜩 묻혀 놓았는데, 2주간 1689마리의 새들 중 약 99%가 깔끔한 솜침대에 머물러 잠시 잠을 청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사주신 당시 동아백과사전(지금은 두산백과사전으로 명칭 변경)을 통해 이 지식을 알게 되었는데, 여튼 어지간해서는 길바닥에서 잠을 자지 않는 참새 특성을 알고, 참새가 미치고 환장하는 햇쌀을 마당에 뿌려놓았습니다. 외가 식구들은 고스톱을 치느라 정신이 없어 제가 뭐하고 있는지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제 예상과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참새들은 외갓집 마당으로 모여들었고, '앗! 쌀이다! 조그만 부리로 쌀을 콕콕 찍어 먹는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쌀이 어떤 쌀입니까. 정종에 묵힌 쌀이기 때문에 먹으면 취하기 마련이지요. 중국 칭화대 분자생물학과 짱원스친 교수가 조류 알콜 실험을 한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참새는 알콜 성분을 0.01mg만 섭취해도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고 합니다. 개구리, 미꾸라지, 다람쥐 등 여러 동물들을 실험해 보았는데, 그중 단연 참새가 압권으로 먼지 같은 미세한 양에도 참새는 푹삭 주저앉을 정도로 알콜 적응력이 0인 조류입니다. 저는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존심이 쎈 요놈들이 아무데서나 자지 않을 거라 생각해, 침대와 도토리를 깔아놓았습니다. 햇빛이 수직으로 내려쬐는 아주 날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제 예상은 100% 그대로 들어맞았고, 참새는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종에 코팅된 쌀을 먹은 참새들은 올라? 오메? 앗따 하는 듯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날지 못하고 비틀거렸는데, 그러다가 잠시 후, '앗! 침대다, 어랏? 베게도 있네?'하는 듯한 표정으로 낙엽 위에 누었습니다. 도토리 베게에 적응을 잘 못해 쿵 머리를 찐 참새로 여럿 보였는데, 저는 상황을 침착하게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낙엽을 뜨거운 햇볕에 두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낙엽은 약 1분만 지나도 하늘을 바라보며 말려집니다. 누워 있는 참새를 포근하게 감싸며 낙엽은 공벌레처럼 둥글게 말리게 되는 것이지요. 참새들은 숙취 때문에 절대 깨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100마리 정도 누워 있는 참새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감자 담는 소쿠리에 참새를 한 마리 한 마리 주어담았습니다. 지들끼지 포개지면서 일부 놀란 참새가 잠시 버둥거리기도 했지만, 정종에 절인 쌀은 요녀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지요.
쓰리고, 포고!를 외치던 외삼촌은 기겁해 했고, 큰외삼촌은 둘째 외삼촌을 끌고 나와 축사 돼지우리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저게 말이돼? 오메 재원이 저녀석 커서 뭐될라꼬 사기치는 것좀봐! 오메 냄새나 디지겄네. 돼지 등에 우찌탄데요 성님. 나좀 꺼내주이소.
결국 큰 외삼촌이 만원짜리 세 장을 꺼내 네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그날의 헤프닝은 끝났지만, 외숙모가 아무튼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은 어쨌냐구요? 우리 외할머니 드렸지요. 초등학교 손자가 주시면 안 받으실 것 같아서, 자개장 맨 아래 외할머니가 용돈 꼬불쳐놓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 깊숙이 삼만원과 제 용돈 1천원을 묻어두고 왔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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