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개구리 울음소리 하나로 어린 새끼뱀을 제외한 뱀 일가족을 몰살시켰던 저는, 집에 돌아와 외할머니에게 뱀을 몇 마리 드렸습니다. 어떻게 뱀을 잡았냐고 놀라시며 괜찮냐 괜찮냐 몇 번이나 물었던 외할머니는, 괜찮은 저를 보고는 휘익 돌아서며 '뱀술이나 담가야겠다'고 곧바로 소주를 꺼내셨습니다. 저는 작은 효도라도 한 듯 싶어 흡족한 마음이었고, 맛난 저녁을 먹은 후 밤하늘의 맑은 별을 감상하며 툇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외숙모는 뱀을 잡아온 제가 무척이나 신기했는가 봅니다. 몇 번이나 뱀을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끝내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더니 '에구에구 내 정신좀 봐, 감자 삶아놓고 이게 뭐래. 다 타버렸는갑서.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나!' 외숙모는 자책하며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맛난 감자를 꺼내오신 외숙모에게 저는 세 번째 감자를 한잎에 쏙 넣고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외숙모, 까마귀 한 삼십 마리 잡아올까요?“
외숙모는 눈이 휘둥그레 커졌습니다. 그리고 제 눈을 똑바로 보며 다시 물으셨죠.
"앗따, 니는 까마귀도 잡을 수 있냐이. 저번에 맷돼지 꼬랑지 잡고 제천인가 뒷산에서 내려왔다는 소리 니 엄마한테 듣긴 혔는디, 까마귀는 우째 잡는디야?“
"필요하면 말씀혀요이. 제가 삼사십마리는 지금이라도 잽어올 수 있응게요.“
외숙모는 요즘 건망증이 심해져서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바보천치가 될 것 같아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물끄럼히 보며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잡아올 수 있음 잡아와봐. 세 마리 잡으면 외숙모가 5천원 줄게!‘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외숙모를 어른스럽게 바라보며 말씀드렸습니다.
'글다 거덜나요. 외삼촌 알면 외숙모 클나요. 그런 내기 하시는 거 아입니다이.‘
저는 용돈 벌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밤에 혼자 있는 게 무료해서 했던 말이었는데, 저는 포대자루 하나와 해머 하나를 들고 곧바로 외할머니 집 앞의 큰 나뭇가로 걸어갔습니다. 쫓아오지마시요이, 하고 외숙모를 안심시키고는 터덕터덕 걸어갔지요.
사실 참새를 잡을 때에는 정종에 절인 쌀과 나뭇잎 50장만 있어도 살아있는 참새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데, 요놈의 까마귀는 좀 예민해서 공을 들여야 합니다. 아니 공을 들인다기 보다는 한방에 제대로, 임펙트를 주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죠.
외할머니 댁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서쪽 지방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속 외딴 곳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외할머니 댁은 논만 가득한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예전부터 이곳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문씨 집성촌이 부락을 이룬 곳이었는데, 80년대까지만 해도 대여섯 가구가 살았지만 다 떠나고 외할머니 댁 한 가구만 남아 있었지요. 남은 집들은 거의 폐가여서 사실 인기척도 없는 동물 무법 지대였습니다. 근데 이곳에는 약 60년은 족히 넘을 미루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까마귀들이 이곳에서 주로 잠을 잤습니다.
사실 까마귀는 겨울철새로 주로 한국에 찾아오는데, 도심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예전에 수원시에 까마귀 떼가 출몰해 한동안 소란이 있었지만 도심보다는 겨울에 떼로 몰려다니지요. 얘네들은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떼로 뭉쳐서 다니는데, 하늘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천지를 뒤덮기도 합니다. 외숙모는 그냥 새이거니 했겠지만, 저는 까마귀 습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자는 까마귀를 한번에 제압하려고 슬금슬금 미루나무 아래로 걸어갔습니다. 까마귀는 앵무새와 거의 비슷한 지능을 지녔을 정도로 똑똑한 놈들이어서, 낮에는 요놈들을 잡기에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늦은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기습적으로 놈들을 체포해야 가능한데요. 까마귀가 가장 피곤에 절어 잠을 자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입니다.
새를 공부하는 분들은 대번에 제가 무슨 말하는지 잘 아시겠지만, 맹금류 과에 속하는 요놈들도 잠을 푹 잡니다. 관상용으로 키우는 새들이야 마루바닥에서도 잠을 자지만 야생에서 사는 새들이 길바닥에 누워 자는 것은 전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축축한 논에서도 절대 까마귀는 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논뱀이나 거머리 같은 것이 발목을 콱 꺠물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요놈들은 지상 위에서 잡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외할머니 댁에는 미루나무밖에 없고, 사실 그곳에 까마귀가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저는 해머를 들고 찾아간 것입니다.
별로 망설일 것도 없습니다. 한 번 안심하면 푹 자는 녀석들이 까마귀이기 때문에 저는 아무 망설임 없이 해머로 미루나무 밑동을 쿵 때렸지요. 우두두 낙엽처럼 떨어져 제 운동화에 머리를 박고 떨어지는 까마귀도 있었고, 어깨에 푹 떨어지는 녀석들도 있을 정도로 역시 제 생각과 다르지 않게 까마귀는 깊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새들은 고막에 엄청 약한데 고막이 터지면 균형 감각을 잃어 날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떨어진 애들 대부분 골절상을 입기 때문에 아구아파 아구아구 하며 나뒹굴 뿐이지요. 저는 뱀잡을 때 쓰는 집게로 포대에 한 마리 한 마리씩 담았습니다. 아닌 밤중에 해머,를 맞고 고막이 터져버린 까마귀들이 에구구에구구 뭔일이래 하는 느낌의 소리를 내며 나뒹굴고 있었는데, 까마귀 녀석들이 너무 커서 포대에 다 담아도 10마리 정도밖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어슬렁어슬렁 외숙모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채 20분이나 걸렸을까. 닭장에다 마대자루를 슬그머니 풀어놓았는데, 담날 외할머니가 일어나서, 뭔놈의 닭들이 저리 날라댕기려고 환장한다냐며 외숙모에게 지나가는 말을 하셨는데, 외숙모는 닭장 닭들 어무이 다 장날 팔았는디 뭔소리대유, 하며 나가보더니,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뭔놈의 까마귀래. 오메, 울조카가 시상에 이제는 까마귀도 잡아와버렸네. 올라올라 엇따, 정말 미칠 노릇이거만.
잠결에 얼핏 들으니 오메 오천원이 아니라 오만원 줘야할 것 같은디 미쳐불겄네, 오메 참말로 거시기허네이. 저는 돈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라 그저 외면하고 푹 잠을 더 자고 말았습니다. 외숙모는 비법을 알켜달라고 떼를 썼지만, 저는 또하나의 비밀을 간직한 채 외갓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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