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뱀들을 잘 압니다. 그것은 어렸을 적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뱀 일가족을 모두 잡아들인 전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때가... 음...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창 외할머니 댁에서 있었던 일이죠.
할머니는 자꾸 선산에서 뱀이 나온다고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선산은 넓은 논이 보이던 야트막한 언덕 부근에 있었는데, 그 옆에는 조그만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아무래도 습하고 음지가 있던 곳이니 뱀이 많았던 듯합니다. 저는 할머니의 뱀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를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해드릴까 걱정하다가, 무심코 이런 생각이 들었죠. 황소개구리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사실 황소개구리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시기는 그리 얼마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80년대 중반 정도였으려나. 제가 초등학교 다닐 시절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토종 한국 개구리가 들판에 널브러져 놀았는데, 어느 순간 괴물 같은 황소개구리가 나와서 싸그리 잡아먹었죠. 이놈들은 생태 환경을 꽤나 심각하게 변질시켰습니다.
육식성이라 닥치는대로 잡아먹었는데 자그마한 물고기는 물론, 심지어 뱀까지 잡아먹었죠. 그 울음소리가 마치 황소 울음소리가 난다고 해서 황소개구리였는데, 몸집은 보통 큰 토종 한국 개구리보다 무려 서너 배는 컸습니다. 얕은 호수에서 눈알만 살짝 들어올리고 가만히 있다가 한 번에 덥썩 물어버리는 황소개구리. 저는 그 당시 많은 뱀들이 황소개구리에게 잡혀먹어 실음실음 앓고 있다는 둥,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울분에 찬 뱀들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테스트 해보기 위해 황소개구리를 할머니 논에서 대여섯마리를 잡아 빈 장독대에 잔뜩 풀과 습한 흙을 깔아놓고 한참 동안 맛난 것을 많이 주었습니다. 지천에 널린 것이 미꾸라지였기 때문에 거머리에 몇 번이나 물려가면서도 미꾸라지를 공수해 그놈들에게 주었습니다. 놈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단번에 요리조리 맹글맹글 도망쳐다니는 미꾸라지를 한입에 꿀꺽꿀꺽 달게 먹어치웠죠. 저는 몇 일을 정확한 시간에, 아마 밤 9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놈들에게 미꾸라지를 갖다 바쳤습니다. 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놈들은 엉엉 울어댔죠. 후딱후딱 맛난 미꾸라지 달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요놈들을 이틀 동안 굶깁니다. 그리고 선산으로 데리고 가서, 딱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큰 뱀구멍을 찾아 황소개구리 발에 부드러운 명주실을 묶어둔 후, 요놈들이 뱀구멍으로 처들어가게 합니다. 황소개구리는 본능적으로 뱀 냄새를 맡는 것 같았습니다. 엉엉 얼마나 크게 울어대는지, 배도 많이 고팠을 것입니다.
와..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소리만 들어도 대충 알 것 같았는데 우당당탕, 샤아악, 쉭, 슉, 낼---름! 아무리 봐도 황소개구리가 들어가기 만만치 않은 작은 구멍이었는데도 그 안에 들어가 뱀을 잡아드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못해도 댓마리의 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밖으로 꺼내보니 아직도 채 삼키지 못한 큰 뱀의 꼬리 부분이 보이는 것입니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황소 개구리는 그 큰 입으로 통째로 뱀녀석들을 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황소개구리 왼발에 묶어두었던 명주실을 잡아댕겨 그만 먹으라고 확 낚아챘습니다. 그 와중에도 먹성 좋은 황소개구리는 음벅음벅 뱀을 다 잡수셨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외할머니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겠구나! 곧바로 저는 황소개구리 한 마리를 버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와 마이마이를 들고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녹음했습니다. 배 고픈 황소개구리는 미꾸라지를 달라고 목청 높여 엉엉 울어댔습니다. 그 울음은 배고픔의 소리를 넘어 '미꾸라지 줄 때는 언제고, 니가 날 사육하냐?'는 식의 굉장히 사납고 분노에 찬 울음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마이마이와 잠자리채 하나를 가지고 어젯밤 황소개구리가 뱀을 맛나게 드셨던 선산 뱀구멍 앞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뱀들의 집단 서식처였는데, 뱀 구멍은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군락을 이루며, 한 집안이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뱀 구멍 앞에 잠자리 채를 바투 갖다대고, 녹음한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틀었습니다.
여지 없이 뱀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전날 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오빠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에 분노에 찬 뱀 한 마리가 미사일처럼 뱀구멍 밖으로, 황소개구리를 가만 안 놔두겠다는 복수 가득한 표정으로 미사일처럼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말 없이 잠자리채로 녀석을 낚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1분간 정적의 시간을 갖은 뒤, 다시 황소개구리 녹음 소리를 틀었습니다. 오빠나 언니를 잃고 어젯밤에도 가족을 잃은 뱀구멍 앞에서 또 한 마리의 뱀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그냥 잠자리채 안으로 뿅 튀어나오는 놈들을 걷어냈을 뿐입니다.
옆 구멍에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어젯밤 황소개구리에 희생당한 것이 집안 회의를 통해 다 퍼진 듯 보였습니다. 다만 저는 어린 새끼뱀은 냅두었습니다. 그것마나저 걷어내기에는 많이 어렸던 저도 안쓰러웠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에게 잠자리채로 잡은 뱀 열 마리 정도를 보여주니, 할머니는 기겁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뱀들을 잡았냐고 고사리 같은 제 손을 잡고 놀라 물으시던 우리 할머니! 저는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뱀들은 또 한 번 당한 것이 무척이나 억울한 듯 온몸을 베베 꼬며, 혓바닥을 낼름거렸습니다. 그중 한 녀석의 눈물도 얼핏 보았던 것 같은데, 미안한 일이었지만 할머니 생각에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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