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일해 본 사람만 아는) 연영과 지원의 사랑이야기 1
둘이 사랑에 빠진 건 정확하게 서울 근교의 한 치킨집에서였습니다. 또한 둘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도 바로 그 치킨집에서였습니다. 연영과 지원은 한순간에 반했는데, 둘은 쿨러에서 염지를 하다가 눈이 맞았습니다. 둘 다 치킨집 경력은 전무했지만, 지원은 자신은 지구 최강의 치킨 신이라며 늘 동료들에게 '나보다 손질 빨라? 나보다 튀김 더 잘 튀겨? 나보다 닭 한 마리 빨리 담아?'로 자랑질을 했습니다. 동료들은 그런 지원을 보며 '그래 잘 해, 잘해, 진짜 신이야'라며 기분을 맞춰주었지만, 사실 연영은 그런 그가 못마땅했습니다. 특히 다른 것은 고개 끄덕이며 인정했지만 '설존(설거지지존)'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연영은 '풋'하며 비웃었습니다.
큰 바트 20개를 닦아내는데 6분이나 걸리고, 게다가 닭 살 찌꺼기까지 간혹 보이는 그 '설존'이 어설퍼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영이 그런 비웃음(?)을 보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영수 뿐이었습니다. 사실 설존은 설신의 바로 아랫단계인데, 설존과 설신을 참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김연아와 이제 갓 스케이트를 처음 타본 유치원 아이 정도의 차이랄까나. 영수는 남들이 2시간 동안 박박 힘들게 문질러대는 설거지를 보통 27분 30초(거의 시간이 일정함)만에 끝내고,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걸어오다, 이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문에 약 1시간 이내에 설거지를 마친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상실될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영수는 겸손하고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라 그런 것에 크게 게의치 않았습니다. 워낙 영수가 넘사벽이었던 터라 지원은 2위 자리에 스스로 앉아버렸는데, 예쁜 연영은 피식피식 웃었지요. 크게 이상했던 것은 손질의 신이다, 집신(닭 한 마리 빨리 집는)이다 할 때에는 별로 무반응이었는데 '설존' 얘기만 꺼내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대형 볼 30개를 약 7분 만에 주파한 지원이 으스대자 더 이상 꼴을 못보겠다는 듯 연영은 말했습니다. "지원씨, 우리 집 충남 논산에서 식당한 것 아시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지원은 꽤 흥분한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는데, 그 다음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나 7살 때부터 식당 아주머니들 설거지 가르쳐드렸어요. 15년 디시워셔하신 최고의 전문가 아주머니, 저 설거지하는 것 보고 소리치며 울면서 바로 나가셨어요. 7살 저에게 하신 마지막 말이 뭔지 아세요?“
".......“
"너 사람이야?!“
지원은 긴가민가 갸우뚱 휘둥그레 온갖 생각이 많은 표정이 잠시 스쳤지만, 다시 평소처럼 까불며 말했습니다.
"연영씨, 저번에 설거지하는 것 보니, 전 그 정도면 설거지 다 끝내고 미국 시카고 다녀올 시간인데 크큭“
연영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듯, 주방에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처음 화내는 듯한 소리에 다들 깜짝 놀랐지만, 그 장대한 카리스마에 눌려 모두들 '네'라고만 짧게 대답했습니다.
"지금부터 설거지 산처럼 쌓일 때까지 놓아두세요.“
두어시간쯤 지났나 설거지가 쌓이자 씽크대 앞에 선 연영은 짧은 쉼호흡을 하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한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주방 사람들은 아 하는 놀라움이, 오메! 하는 탄성으로 바뀌었고, 하던 일을 멈추고 동상처럼 서 있었습니다.
연영이 한 번 뿌린 세재는 큰 바트 중심에 딱 눈물 한 방울처럼 톡 떨어졌는데, 두어번 비비는 순간, 거품이 큰 바트를 모두 에워쌌고, 물로 세척하는데까지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1.5초 내외의 시간에 끝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드레인까지 정확히 포개졌는데, 사람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집게에 묻은 밀가루 반죽을 떼어낼 때 우리는 끙끙대며 못해도 30초 이상 걸리는데, 연영은 수세미로 스윽 한 번 문질렀을 뿐인데, 제 눈빛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씻겨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튀김기는 좁은 칸칸마다 이물질이 엄청나게 낄 수밖에 없는데, 연영은 세제도 바르지 않고 물만 뿌렸는데 락스에 녹듯이 모두 지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낄낄대던 지원은 안색이 파릇하게 변했고, 무안함에 어찌할 줄 모르더니 이 상황을 인정해 버렸습니다.
"연영씨가 설신해요~ 전 설꾼할게요! 농담한 번 한 것 가지고 왜그러세요.“
아무말도 않고 묵묵히 3분 만에 산더미 설거지를 끝낸 연영은 그런 지원에게 딱 한 마디했습니다.
"원하시면 가르침 드릴게요.“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난 후, 지원은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손질만큼은 최고였던 터라 윙과 순살 쪼개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어셈블만 주로 했던 연영씨는 가위질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예측 불가했으나, 이 포지션도 영수가 신의 경지에 있었기에 지원은 만년 2인자의 자리에서 손존(손질의 지존)까지만이라도 올라서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에 회식자리에서 연영이 영수에게 손질에 대해 딱 한 마디 했는데, 그 말이 다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영수는 손신(손질의 신) 자리를 연영에게 헌납합니다. 연영은 맥주 컵에 막걸리와 소주 사이다와 핫소스 치킨 양념을 버물려 원샷을 하더니 캬 하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닭들이 불쌍해. 결이 왜그래 영수씨는?“
"......“
"윙과 봉을 자른 단면에 가끔 뼈들이 보여. 피도 보이고“
영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었는지 "미안해요. 너무 요즘 속도에 치우쳐서그만..."이라고 말했고, 연영은 하하하하하 크게 웃으며, "저번에 영수씨 윙 40킬로 손질하는 것보니까 하하하하하 뼈를 하하크크 뼈를 짤라놓았어. 그것도 윙 아랫부분을 크크크크크"
아무튼 그날 뒤로 영수는 자신은 더 이상 손신이 아니라며, 지원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지원은 어떻게든 이 영역만큼은 잡고 싶었는지 남들이 다 퇴근한 새벽 3시 넘어서도 혼자 쿨러에서 손질 연습에 매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진 것은 어셈블 전문이었던 연영이 지원에게 몇 마디 계속 툭툭 던진 것이 지원의 화를 돋구었던 것입니다. '지원씨, 윙봉도 구별 못하나요? 아닌 것은 담지 말고 버리세요좀' 지난 한 달간 손질에 모든 걸 걸었던 지원에게는 도무지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튀김에 들어가기 전 닭 집는 것을 지원이 해왔기 때문에 이것은 뒤통수를 일타투피 맞는 일이었는데, 화가 난 지원은 "대체 뭔말을 하는 거에요?!"라고 툭 쏘아부쳤습니다.
하지만 연영은 "못해도 윙봉 10조각에 546그램을 맞춰야 하는데, 아무리 못해도 565그램 이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만 해도 580그램이 넘어요. 무려 20그램 차이가 난단 말이에요." 그 20그램 차이를 누가 아느냐고 말한 것은 지원의 실수였습니다. "뭐요? 고작 20그램 차이?“
화가 난 연영은 팔을 부치고 정면에서 쏘아부쳤습니다.
"최근 윙을 사간 우리 체인점 고객 중 9.5%가 클레임을 걸었어요. 그 사람들 대부분 윙만 20년째 먹는 사람입니다. 윙봉만큼은 양계장 업자도 못따라와요. 절단할 때 정확히 윙봉을 잡아댕겨 갈라야 하는데, 안 잡아땡겨 자르른 순간 1그램에서 1.8그램 정도 차이가 나요. 게다가 봉 윗부분 살도 잘라야 하는데, 실수로 피부가 아닌 살을 벗기는 순간 3그램 이상 차이가 나고, 그런 것이 7개나 들어간다고 하면 이건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제발 그램 수 생각하면서 담으세요. 윙봉 합해서 10개 담는데 한 4그램 차이나는 것은 인정한다고 해도 이렇게 틀리면 어떡해요. 손은 째로 있어요? 들어보면 알 것을 아직도 무슨 저울질이야!“
그날 지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미선이 치마 아이스케키하다 누나한테 걸려 개맞듯 맞고 눈물 흘린 이후 처음으로 펑펑 울었습니다. 스물다섯의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연영씨 앞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원이 너무 안쓰러웠던지, 연영은 쿨러로 따라오세요,하며 시크하게 지원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따뜻한 눈빛으로 연영을 지원을 가르쳤습니다. 여전히 울고 있는 지원의 눈물을 연영이 염지하던 손으로 닦아주다가 지원은 더 크게 울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지원은 '손신'과 '설신'으로 저를 제치고 거듭났습니다.
둘의 러브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2편은 내 맘대로!